기고 대구·경북을 사랑한 한국서단 거목, 근원 김양동 기증작품전을 보고 문학일주 김진혁 화가, 석재 서병오기념사업회장
김양돈 기증 작품 ‘천정지령'(왼쪽)과 ‘황정야우'(오른쪽)
김양돈 기증작품 증행화마을 주인
계명 대학교 시민 교육원 개원 3주년을 기념하는 근원 김·양동(1943~)석좌 교수의 기증 작품전이 10월 18일부터 11월 18일까지 행 초 박물관 1층의 히가시실에서 열렸다.이번 전시는 김 교수가 작품 37점을 계명대 행소 박물관에 기증한 데 따른 것이다.필자가 서예가인 김·양동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서울에서 발간되는 『 월간 서예 』의 작품 감상 페이지에서 그가 쓴 행서 횡액의 글씨를 보았다.운 펜 그림이 비대칭적으로 변화하고 일반 서예가의 고답적인 전형의 운 만년필과 다르다고 여겨졌다.요령 용필에서 콘·현대 서예가들의 임서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미감을 찾는 작가로 보였다.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한국 서단의 중요한 기획 행사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서 접했다.그 뒤 원광 대학교에 서도과 교수로 부임하며 교육 현장에서 체계적인 서예를 연구 지도하는 것을 알았다.그 뒤 자신의 청춘을 보낸 고향 같은 대형 추 계명 대학교 미술 대학 서도과가 생기면 교수에 넘어오고 한국 서단에 노력했다.가끔 자리를 함께 하며 그가 경상 북도 의성군 출신이며 따뜻한 인상과 맑은 성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2017 석재문화상 수상기념전(왼쪽부터 김진혁, 근원 김양동, 서산 박대성, 백영일)
석재 서울·뵤은오 문화상 수상자로 만난 근본 선생 필자는 2017년부터 근대 한국 서화계의 거목 석재 서울·뵤은오(1862~1936)선생을 표창하는 기념 사업회에 참여하게 됐다.현창 사업 가운데 메인 행사인 서울·뵤은오 서예 상을 “문화상”에 명칭을 변경하는 수상 작가를 고민하다가 심사 위원 전원 합의로 근원 김·양동 작가를 선정키로 의견이 일치했다.선정의 이유는 우선 시서화의 세절을 넘어 전각의 세계를 흡수한 현대 서예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일관성 있는 모습이었다.두번째는 학문적 미술 교육의 성취에서 대학에서 수많은 인재를 키우고 한국 서화계의 현대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모범적인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3번째는 『 한국 고대 문화-원형의 상징으로 해석 』다는 저서를 발간하고, 미술계뿐 아니라 사학계에도 논쟁 거리를 제시한 것 등이다.그 해 12월, 석재 문화상 수상을 기념하고”군 원 김 양식장동 초대전”을 대구 문화 예술 회관에서 열기 위해서 그와 몇 차례 만났다.살아온 과거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밝힐 그에게서 어릴 때의 감동적인 얘기를 듣게 됐다.선생님은 의사 성에서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청소년기에 대구에 와서 여러가지 알바를 하면서 학업을 이어가고 왔다는 역경의 세월을 듣게 됐다.선생님은 경북 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경북 영천(경북·영천)에서 교편을 잡고 이후 서울에 가기 위해서 배치 시험에 합격해서 서울에 직장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붓을 쥐게 됐다고 말했다.그는 1960년대 후반 26세 때 한국 서단의 전각가인 철농 이·기우(1921~1993)의 문하에서 본격적인 학습을 시작했다.1970년대는 한학자의 청명절 림창 준(임·장이, 1914~1999)의 태동 고전 연구소와 1980년대는 우전 노부히로 레츠(우전·신 호욜, 1914~1993)에 고전을 배웠다.또 예·영혜(1929~1995)와의 만남에서 골동품과 인문학적 한국성에 관한 본질에 빠졌다.”석재 서울·뵤은오 문화상-김·양동 작가전”에서는 주옥 같은 대작과 시·서·화면·시시를 맞춘 명품이 전시됐다.한지에 한국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도판에 칼과 도구를 이용하여 주제의 형상을 새긴 뒤 그 도판 위에 한지를 탁본 기법으로 떠서 말린 뒤 다시 먹이나 흙 채를 응용하고 주제를 완성시킨 작업이었다.이는 그림으로 선염과 수묵화 기법, 발묵을 같이 하고 배채 기법 등 다양한 조형 실험을 통해서 격을 높이는 작업의 순서로 진행된다.그런데 전체 작품에 흐르는 텍스트를 보면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고 태어난 인문학적 지평이 넓은 깊지 않으면 제작되지 않는 자서전 현학적 미감에 놀랐다.지난 10월 행서박물관 전시 개막식 당시 근원 김양동 선생님간곳 박물관에서 열린 작품전, 올해 10월 계명대 행소 박물관에서 열린 기증 작품전에 출품된 작품은 그의 공적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한지 위에 먹과 토채에서 제작된 “천장 지령의 옛 시가”을 시작으로 “고대 무용의 기원”,”처용 무의도”을 비롯한 “석재 서울·뵤은오의 시”,”경 허 선사의 시”등이다.80세를 맞이한 작가는 “예술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정신을 표현하는 향기 있는 그릇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었다.전시실 한쪽에 마련된 영상을 통해서는 계명 대학교 정년 퇴임 후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계명 대학교와 대구 경북에 대한 작가의 사랑과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이런 사랑이 있었기에 올해 제작한 37점의 작품을 이상 서울 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었다.현재 동 아시아권의 공통 문자인 한문을 통해서 새로운 해석된 현대 서예계에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고졸 미를 혁신한 작가가 있을까?이는 한국성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신화와 원시·아트에서 차용한 작가의 노력에 의한 결과이다.알타이 문화의 시원인 주술적 기호에서 시작되면서 몽골 서부 지역과 몽골의 암각화에서 출발하고 중국의 만주 지역을 거쳐서 한반도까지 전파된 조상으로 표상으로부터 도출된 “과거-현재-미래”를 찾은 도정의 결과로 풀이된다.그 많은 공력을 보면 중앙 아시아의 실크 로드에서 볼 수 있는 벽화와 중국 둔황 석굴에서 몇세기에 걸쳐서 조성된 도상의 이미지가 겹친 것처럼 보였다.하늘과 땅, 사람의 천지 인도학에 기인하고 유전 프랑스선 3곳을 맞추어 그 안에 21세기 후기 포스트 모더니즘이 장식된 어쩌면 서구의 현대 미술과 달리 육화된 개념 예술로서 자라난 듯했다.독보적이고 일관성 있는에서 줄곧 80평생을 살아온 작가의 흔적이 녹아 있는 결과가 이번 전시였다.박물관을 뒤에 나오는 길은 “한국 미술의 원형은 뭔가 “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프리미티브 예술 : 미개예술이 가진 생명력과 신비성을 현대 조형에 적극 도입하려는 시도